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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김곡의 한겨레21 ‘홍가혜와 김문수의 우결’ 특별기고에 대한 특별한 소감어느 ‘듣보’ 감독의 ‘위험한 공동체론’
박한명 위원 | 승인 2014.04.24 11:56

 
 
[박한명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폴리뷰 편집국장] 예능에 진지한 답을 하는 게 과연 맞는가 싶어 한참을 망설였다. 웃자고 쓴 건가 해서 눈비비고 다시 한 번 읽어도 봤다. 제 딴에는 김문수를 한껏 조롱했다 싶어 만족할진 모르겠지만 단순히 생각하기엔 글에 담긴 사고방식이 위험했다.
 
참사에 대처하는 이 작자(오해 마시라, 작자란 作者란 얘기다)의 주장과 공동체 의식대로 국가가 굴러간다면 그야말로 삼류국가, 원시국가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허언증자 홍가혜와 김문수를 ‘우결’로 엮는 탁월한 예능감은 인정할 수 있겠으나, 한겨레21에 “일손을 놓고,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 “패닉을 통해서라도 희생자들과 교감하고 그들에게 사죄하는 것, 이것이 공동체의 자연스러운 교감방식이고 또 존재방식이리라”라고 써 갈길 수 있는 그 무식한 용감성은 언급해야할 것 같다.
 
참사에 정부가 넋 놓고 있다고 몇날 며칠 악을 써대는 한겨레신문 아닌가. 온정신으로 참사를 수습해도 모자랄 공직자에게 “패닉에 빠져 희생자와 교감하는 게 공동체의 존재방식” 이라고 자랑스레 떠드는 게소리는 알아서 걸러야 하지 않았을까.

김곡이란 자의 ‘홍가혜와 김문수의 우결’ 이란 글을 반박하기란 사실 쉽지가 않다. 팩트와 논리로 쓴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작자가 허언증자와 동급으로 놓으며 꼬집은 김문수의 흠이란 게 애초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게 아닐뿐더러 비록 홍가녀에는 한참 못 미칠지언정 이 작자 역시 상당한 수준의 상상력을 지녔기에 반박이 무의미하기도 하다.
 
개그에 호통을 치는 것만큼 우스운 꼴이 어디 있나. 상상력의 가지가 무한대로 자라는 이런 특이한 부류에게는 그저 관심 어린 눈길 한 번에 씩 웃어주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자가 지닌 ‘공동체론’만큼은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세월호 침몰과 같은 이런 참사엔 온 국민이 다 함께 패닉 상태로 지내야 뭔가 조금이라도 죄스러움을 벗는 것 같다는 심각한 불안정서, 그 불안정서를 너 역시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과 파쇼, 이런 병적 정서와 폭력적 감정이 빚은 게 김문수라는 희생양이고 마녀사냥이다.
 
희생양과 마녀사냥이 횡행하는 사회는 성숙한 민주사회가 아니라 원시사회다. 그런 근원적 불안과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사회를 공동체의 이상향으로 미화하는 수준의 사고가 마치 우리 이웃에 대한 연민과 애정인 것처럼 통용돼서는 곤란하다.

모두가 패닉,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잘못된 공동체의식

온 국민이 패닉 상태여도 얼음장처럼 차가운 정신 상태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해야 하는 사람이 공직자다. 특히 국가적 재난 사태에서 이들이 일손을 놓고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이고만 있다면 국가적 패닉 상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손석희가 잠시 할 말을 잊는 TV화면에는 열광하면서 화면에 나오지 않는 그 수많은 시간동안 사고 수습에 열심을 다하는 김문수를 비롯한 많은 공직자들에 대해선 사소한 오해를 풀지 않고 무조건적인 덮어씌우기로 비난과 매도와 조롱을 퍼붓는 건 우리 스스로에게 침을 뱉는 행위일 뿐이다. 그리고 진도와 안산 등지에서 지금도 실종자와 유가족들을 돕고 있는 이름 모를 우리의 많은 이웃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국가를 위기에서 건지는 건 “일손을 놓고,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이는” 따위의 것들이 아니다. 더욱이 패닉 상태로 희생자와 교감해야 한다는 멍청한 얘기도 공동체의 존재방식이 될 수 없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가. 남은 가족들의 슬픔은 누가 달래고 위로하나. 그건 패닉 상태의 감정이 아니라 차분한 이성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실종자 가족들의 호소에 “나는 경기도 도지사다. 경기도에서 영향력이 있다” “그러나 여기는 경기도가 아니다”라고 한 김문수의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는 건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굳이 뉴스타파의 짜깁기 신공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당장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다. 선내 진입 등이 이렇게 더뎌도 될까. 이 정도면 범죄 아닐까”라던 한 청년비례대표 의원의 깃털처럼 가벼운 말이 아니라, 찰나에 말라버린 손석희의 눈물이 아니라, 김문수가 실제로 한 행동을 찾아보면 될 일이다.
 
분명한 것은 김문수에 대한 끝없는 상상력을 과시한 이 작자의 한겨레21 ‘특별기고’글이야말로 전형적인 나르시스트의 자기애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김문수를 들러리세우고 병적인 허언증자를 묶어 한편의 재미있는 예능을 만들었다고 자랑을 한 것이니 깔대기로 치자면 최고로 뾰족한 깔대기다. 팩트가 빠진 지면을 상상력과 추리로 가득 채워 개그와 같은 예능을 만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김문수를 이용하는 김곡 당신의 깔때기

영화감독이라는 김곡, 이 작자가 내뱉은 주옥과 같은 말을 돌려주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평시(平時)가 아니라 전시(戰時)가 되면, 이는 결코 환영받을 수 없다. 전시상황에서 공동체가 그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잠시나마 ‘자기’를 버리고 희생자들과 나누는 교감과 공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애는 재난을 애도하려는 공감을 방해하는, 또 다른 재난이 된다. ‘왜 다들 패닉에 빠져 있지? 여기 내가 있는데?’ 하지만 나는 할 말을 잃고 싶고, 슬퍼하고 싶고, 애도하고 싶고, 공감하고 싶다. 지금 당신들의 연극이 그것을 막고 있다. 바로 당신의 무대, 당신의 자기애, 당신의 깔때기가 재난이다. 그리고 충고하건대, 지금 진도는 허언증녀와 영향력맨이 ‘우결’을 찍을 만한 곳도 아니다.”

“평시가 아니라 전시가 되면 이는 결코 환영받을 수 없다. 전시 상황에서 공동체가 그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희생자들과 함께 패닉에 빠져 공감, 교감을 나누는 것이라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가 아니라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이성이다. 그리고 공동체가 패닉 상태에 빠져있어야만 한다는 궤변은 재난을 애도하려는 공감을 방해하는, 또 다른 재난이 된다. 할 말을 잃고 싶고, 슬퍼하고 싶고, 애도하고 싶고, 공감하고 싶다는 당신은,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다만 당신의 한가한 얘기가 전시(戰時)에 재난이 되어 슬픔을 극복하는 것을 막고 있다.
 
한겨레21이 할당해준 바로 당신의 지면, 당신의 특별한 자기애, 당신의 깔때기가 재난이다. 그리고 충고하건대, 지금 진도는 허언증녀와 어느 듣보 감독의 원시적 공동체론을 들을만큼, 적용할만큼 한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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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명 위원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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