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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로 사건,한국인 차별에 일본 사회에 몸으로 저항
서원일 기자 | 승인 2014.03.31 01:31

   
▲ 김희로 사건/사진@온라인커뮤니티
재일동포 2세인 고 권희로씨는 의붓아버지의 구박으로 열세 살에 가출하여 배가 고파 음식을 훔쳐 먹었고, 일본 사회의 천대 속에서 수차례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서원일 기자=푸른한국닷컴]의붓아버지의 성을 따라 '김희로'라는 이름을 사용하던 1968년 2월20일 채권자의 청부를 받아 빚 독촉을 하던 야쿠자 2명이 “조센진, 더러운 돼지새끼”라고 한 말에 격분해 라이플총으로 이들을 사살했다.

그는 다이너마이트와 실탄을 갖고 다음날부터 나흘간 후지미야여관의 손님 등 12명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다 4일 만인 24일 검거되었다.

이 인질극은 당시 TV 등을 통해 생생하게 중계되었고, 그는 “경찰관의 한국인 차별을 고발하기 위해 사건을 일으켰다”고 주장하며 TV를 통해 경찰의 사과를 받아내 파문을 일으켰다.

체포된 후 8년간의 재판 끝에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구마모토형무소에 수감되어 일본 최장기수로 31년간 복역하였다.

그의 가석방을 위해 1980년대 후반부터 박삼중 스님과 재일동포 사업가 조만길 등이 ‘재일한국인 김희로씨 석방후원회’를 만들어 노력해 왔다.

그 결과 1999년 9월 7일 31년 만에 7년 이상 복역한 외국인 장기수는 법적으로 국외 추방토록 되어 있는 일본 법규에 따라 박삼중 스님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권희로의 이야기는 1970년 분노는 폭포처럼 이라는 책으로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고, 1990년대 초에는 영화 ‘김의 전쟁’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고향 부산으로 영주 귀국한 뒤 노년을 삶을 정리하려했던 권희로 씨는 옥중 결혼했던 배우자가 자신의 재산을 챙겨 2차례나 잠적하는가 하면, 내연녀와의 불화 끝에 살인미수와 방화혐의로 구속되는 등 고국에서의 말로조차 평탄하지 못했다.

권희로씨는 2010년 3월26일 부산 동래구 봉생병원에서 전립선암 투병중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권희로 씨는 자신의 귀국을 도와준 지인에게 시신을 화장해 유골의 반은 선친의 고향인 부산 영도 앞바다에 뿌려주고, 반은 시즈오카현 어머니 묘에 묻어달라고 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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