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은 유별나게 정(情)이 많고 인연과 의리를 중요시하는 국민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 발생적인 모임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 권영이 칼럼위원

[권영이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시인 겸 작가]혈연을 통한 종친회, 지연을 통한 향우회, 학연을 통한 동창회 등이 주류를 이루지만 사회생활을 통해 엮인 직장이나 등산, 골프, 낚시, 바둑 등 취미 동호회, 군대생활을 같이한 인연으로 모인 전우회 등이 있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를 맞아 카페가 많이 생겨서 활동을 하고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을 통한 SNS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짐으로 모임활성화에 촉매역할을 하고 있다.

하물며 여행을 통해 비행기를 같이 탔다고 하여 주선된 모임까지도 있다고 들었다. 우후죽순처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영역 등 각 분야에서 조직된 사회단체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아서 거론할 수조차 없다.

나도 문학을 하는 사람이니 관계된 문학단체도 많고 근간에는 ‘시가 흐르는 서울’이란 시 낭송단체에도 가입하였다, 집 인근인 동작동 국립묘지 둘레 길을 같이 걸으며 건강을 다지고 교류하는 ‘국민건강형제드림팀’이란 다소 긴 이름의 단체에도 나가고 있다.

내가 잘 아는 어떤 분은 인맥구축을 위해 대학마다 설치 운영하는 대학원 최고위과정을 10여개 가까이 다녀서 동문회 감투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너스레를 들은 바도 있다. 오죽하면 모임을 만드는 노하우까지 회자되고 있을까.

모임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된다고 하여 각종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하고, 참석자에게 보람을 주기위해 유명 연예인이나 거물정치인을 초청하기도 한다. 그리고 회비에 비해 손해는 보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도록 선물협찬을 받아 뿌리기도 한다.

요즘은 조찬기도회나 각종 사회이슈에 따른 포럼도 많다. 어느 새벽에 여는 조찬포럼에는 300명이 넘는 인원이 운집하는데 위의 조직노하우를 실행했는지는 모르나 회비 만원내고 선물 받고 신문지상에서나 볼 수 있는 정계의 거물도 보고 유명 연예인도 등장하고 있는데, 겉으로는 그런대로 잘 굴러가는 것 같이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비즈니스적인 장사냄새를 물씬 맡고는 실망한 적도 있다.
 

문제는 모임의 진정성이다. 모임의 목적과 방향과는 거리가 멀게 운영되어 회원들에게 실망을 주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모임의 목적은 그럴듯한데 모임을 이끄는 리더가 엉뚱한 방향으로 회를 운영하여 사람들을 이용하려는 속셈을 간파하고 정말 낙담정도의 실망을 한 일도 있다.

학군(ROTC) 초급장교로 임관하여 군대생활을 한 동기생들이 전우애로 교제하며 건강을 다지자고 청계산을 오르자고 산악회를 구성하여 등산모임을 가진 일이 있었다.

그런데 목적과 초심이 시간이 갈수록 변질되어 산에 오르기는 뒷전이고 등산은 적당히 하고 막걸리 먹는 흐름으로 가더니 아예 술 먹는 시간에 나타나 2차 술판까지 벌리며 건강을 해치고 끼리끼리 사교장이 되는 것도 보았다.

정치의 계절이 도래하면 속셈이 들여다보이는 자서전 출판기념회도 많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팔순잔치를 겸하여 열린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생명이 자산이다”라는 책 출판기념회는 무엇인가 다른 진정성과 진실이 묻어나는 감동이 가슴으로 전해진다. 본인 스스로 인사말을 통해 말했듯이 “오무(五無)모임”이라고 하였다.

어느 모임에나 관례적으로 등장하는 5가지가 없는 모임이라하였다. 그 다섯 가지란 화환, 축의금, 얼음조각이 없으며 내빈소개가 없고 축사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 오무(五無)중에 내빈소개에 대하여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팔순의 이어령 전 장관은 감사인사를 통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동행해준 이들 모두를 위한 잔치입니다. 나와 동행했던 이들은 똑같이 VIP이고 오신분이 다 중요인물입니다”라고 말하여 내빈소개와 축사가 없었다고 설명하였다.

하기야 문화계에서 한국의 지성인을 자임하는 이름만대면 알만한 인물들이 700여명이 운집했으니 누구를 소개하고 누구에게 축사를 맡기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내빈소개의 생략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느낌은 왜일까.

실제적으로 나 자신이 어느 모임에 가서 소개를 받으면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고 인사하며 내가 무슨 인물이나 된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고, 혹 소개가 없으면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여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추한 속물근성을 보고 야릇한 미소를 지었던 일 때문이었다.
 

이어령 전 장관은 “함께 동행해준 문화예술인들의 잔치이고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후배 문화예술인들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아이디어를 내어 마련한 팔순잔치자리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형식에 치우치는 허례허식적인 화환이나 얼음조각도 없애고 도시락으로 꾸민 소박한 모임도 팔순을 건강하게 사신 장수를 진심으로 축하 하고 출판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모임이라면 얼마든지 감동을 주고 기쁨의 자리가 될 수 있다는 모범사례가 되었다. 문제는 모임의 진정성이다.
 

푸른한국닷컴, BLUKOREADOT

권영이 위원  cow-tw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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