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11월 4일입니다.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윤동주가 일본에서 그의 시「별 헤는 밤」을 쓴 날입니다. 그래서 내게는 이 날이 특별합니다. 어찌 집안의 기일이나 생일만 특별하고. 국가의 명절만 특별하겠습니까? 시인이 영롱한 시를 쓴 날도 특별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명사(名士)들의 일화(逸話)읽기를 좋아했고. 커서는 그들을 있게 한 고향과 그들의 손때가 묻은 유적을 즐겨 찾아 회상에 젖곤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피아노의 시인 쇼핑이 고국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 올 때 폴란드의 흙을 상자에 담아 온 것을 본받아 서울에 처음 올라올 때 고향의 흙을 가져왔고.

지금도 명동에 나가게 되면「배따라기」의 작가 김동인이 종현(鐘峴, 명동성당고개)의 종소리에 잠 못 이룬 것을 떠올리거나 더 오래전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장수가 북을 쳤다 해서 북 고개라 명명한데서 시절의 수상함도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매년 11월 4일이 되면 새벽에 깨어나「별 헤는 밤」을 부른지도 어언 40년이 넘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실용적이지 못하다거나 감상적이라고 탓할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는 영혼을 노래하고 또 누군가는 밤을 지키는 사람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이 시든 글이든 그림이든 곡이든 창작 동기나 배경은 중요합니다. 동기나 배경은 그 작품이 샘물이라면 샘이고 화초라면 화단이 되고 나무라면 수풀이 됩니다. 우리가 한 작품의 창작 동기나 배경을 알게 되면 이해는 높아지고 감동은 배가되어 수준 높은 감상을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윤동주의「별 헤는 밤」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고. 일제에 강탈되기 전후해서 조선의 백성들이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아이 손을 잡고 두만강을 건넌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내 나라이지만 내 나라라고 부르지 못하고. 고향 간도는 아스라이 저 멀리 있습니다. 윤동주가 그랬습니다.

그러나「풍광이 끝나는 데서 정회가 일어난다.」고 윤동주는 마음의 벼랑에서 옛 시인의 반열에 들어섰습니다. 나는 이 새벽에는 어김없이 윤동주의 마음을 헤아리고 잠시 윤동주가 되어서 그의 꿈, 그의 지향을 생각합니다.

나는 이 의식(儀式) 아닌 의식을 통해 시인이 겪었을 고뇌를 조금이라도 같이 하려하고. 마음을 더욱 새롭게 하며.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면서 마음을 다잡아보기도 합니다. 이것은「인간의 감정이 솟구치고. 기상(氣象)이 비장한 새벽시간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애급탈출을 잊지 않기 위하여 유월절(逾越節)을 지키는 것처럼 내 마음의 절기(節期)로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 이제는 윤동주가 노래하던「패, 경. 옥」이런 소녀들도 없고.「프랭시스 잼이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같은 시인도 없습니다.

나는 먼 길 떠나는 여행자로서 스산했지만 그래도 누군가 그리워할 수 있었던 그 11월 4일 새벽을 깊이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내일 새벽도 나지막이「별 헤는 밤」을 불러볼 것입니다.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

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

끼, 노새, 노루, 프랭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

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푸른한국닷컴, BLUKOREADOT

김성춘 위원  kimmae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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