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한국닷컴 김성춘 칼럼니스트]
임진왜란에서 왜군을 물러가게 한 제1의 공은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자고 선조에게 의견을 낸 내시 이봉정과 이여송 휘하의 청군이었다.
우리의 이순신은 바다에서 분전(奮戰)하였을 뿐이었고. 의병의 활동은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얼굴을 들지 못할 수준이었다.
그 의병들 중에서 고경명은 아들 인후와 함께 진산에서 전사했고. 김천일은 아들 상건과 함께 진주 남강에 투신했으며, 조헌은 아들 완기와 함께 금산에서 죽었다.
무엇이 이들 아버지와 아들을 죽게 했을까? 국수주의자나 어용학자나 관찬학자들이 말하는 꼭「나라」였을까? 조선은「백성의 나라」가 아닌「사대부의 나라」였다.
그래서 한양 백성들은 대궐에 불을 질러 화풀이를 하였지만 사대부들은 「부채의식(負債意識)」이 있어 가만있지 못하였다.
사대부는 동학란 때에는 동학군을 비도라 적대시 했으며,태평천국의 난 때에는 태평군을 흉도라 하여 마구 죽였다.
우리가 왕조시대 사람들이 아무리 탁월하고 특출해도 그 사람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이라도 후한 점수를 못주는 것은 그들의 덕성은 훌륭하지만 그들이 공화제의 사람이 아니고, 민주주의적 가치와 자유와 평등에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개혁사상가인 허균이나 장약용까지 이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떠안아야 할 시대적 한계, 시대적 약점인 것이다.
나라가 왜 필요한가? 왜 「민족자결주의」가 한 때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을까? 사람이 인생의 목표인 「자기발전」「자아확립」를 하는데 그것이 가장 좋기 때문인 것이다.
「규모의 경제」란 말이 있듯이 사람이 뜻을 펴고 인간적인 생활을 하는데 나라나 민족이 최적의 집합체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나라가 이를 충족 못시키거나 수용을 못하면 사람들은 당연히 더 큰 이상인 세계나 인류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은 전인구의 20% 남짓한 사대부들이 80%의 사람들에게 기생하고 그들을 착취한 특권층의 나라였다.
홍길동이 홍판서가 아버지지만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차별의 나라였다. 빨리 망해야「사람 사는 세상」이 되는 타기해야 할 나라였다.
그런데 그 조선과 같은 나라가 지금도 있다면 어떻게 하나? 구조적으로 중층적으로 복합적으로 서얼들이 양산되고. 사람들이 좌절하고 실망하는 나라라면?
조선은 그래도 국은(國恩)이 있어 고경명 부자, 김천일 부자, 조헌 부자 같은 중절의 선비들을 낳았었고 그나마 춘추를 읽어 기개가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지 만 오늘날은 누가 있어 나라의 위신을 세워줄까? 두보는 일찍이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라 하여 그가 의도한 것 이상의 허울뿐인「나라」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조선의 사대부라도 부끄러운 이름인데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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